상식
아무것도 당연한 것이란 없다.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기원이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아보지 않는 한 우리의 의식은 '체제가 원하는 상식'에 얽메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상적인 가족상, 남여의 역할, 어린이-아동이라는 개념, 동성애에 대한 금기시 등 대부분의 상식이란 사실 반만년 인류역사 중 기껏해야 100여년 남짓한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안정적인 노동력 재생산을 위하여 만들어낸 통념일 뿐이다. 다시말해, 상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컫는 상식이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체제가 존재하고 운영되기 위한 전제조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지금의 체제에 만족해서 언제까지나 그 안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상식에 도전하여야만 한다. 상식에 매몰된채로 아무리 눈앞의 현실을 비판해봐야 그것은 어떤 해결책도 가져다 주지 못할 뿐더러 결국 자신의 운명, 심지어는 사회전체를 비참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근본적인 불행의 원인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고 (혹은 외면하고) 단편적, 지엽적인 원인에만 급급해보아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매연과 폐수를 내뿜고, 광활한 산림을 파괴하고 사막화를 야기시키는 이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큰 틀 속에서 내 집 앞의 녹지, 도로 옆의 가로수가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는 경쟁과 성장을 상식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끝없는 경쟁에 지치고, 삭막한 현실에 괴로워하면서도 경쟁, 시간엄수, 효율, 노동의 상품화 이 모두를 그저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왜 우리는 인간의 역사,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 대하여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자본주의를 깨어질 수 없는 상식으로 받아들이고만 마는가. 우리는 이러한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상식을 패러다임이라 부른다. 친미와 반미의 패러다임, 진보와 보수의 패러다임, 민족과 국가의 패러다임...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고민과 논의는 저러한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권력은 자신의 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논의를 그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담론을 유도함으로써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회피하고자 한다. 따라서 정말 근원적인 문제를 찾고 본질적인 진보를 원하는 이라면, 이 패러다임 자체를 거부하고 긴 인류 역사의 맥락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라는 틀 아래에서 그것들을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상식이 아니라 원칙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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