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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과 정체성
사회 체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에게 있어 그러한 사회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거부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끝내 현실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쨌거나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으니깐 말이다. 어느정도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타협이 자신의 정체성과 최대한 부딛히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순히 타협을 최소한으로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체성이란 사실 어떤 것에 대한 반대로서가 아니라 무엇을 향한 지향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향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자신을 지키는 타협도 가능하다. 지향없이는 어떤 기준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다. 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현실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대안을 고민하고자 하는가? 오늘날 진보의 레토릭으로 탈핵,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철폐, 기본소득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안건 하나하나가 아니라 대체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는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단지 나는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화되고,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는 사회, 핵없는 세상,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세상을 위해 진보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지향을 향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문제는 이러한 각각의 안건들에 대한 이해와 입장의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지지하고 혹은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내가 생각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애를 써야한다. 그것이 한 인간의 철학이고, 한 인간은 자신의 철학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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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1:52 Trackback 0 Comment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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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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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근들어 글이 뜸해진 것은 생각을 글로 표현할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해야할 일에 쫓겨서도, 연구에 대한 고민으로 다른 고민을 할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다. 글쓰는 기술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때문도 아니다. 단지 글에 담아낼 생각이 부족해서다. 삶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충분히 사유하지 못해서이다. 게으름과 나태가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고통과 아픔, 슬픔을 그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죽음과 같은 둔감함이 나를 휩싸고 있다. 육체는 살아있으되 정신은 죽어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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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1:10 Trackback 0 Comment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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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일본의 한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화차'가 개봉함과 동시에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낯선 장르의 소설들이 소개되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어떤 사건의 비밀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춘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그 사건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조건들에 집중하는 소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 '화차'를 보니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떤 사회적 조건이 그를 그러한 상황으로 몰고 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추리소설들에 비해 꽤나 묵직한 주제의식을 갖는 셈이다.
여튼, 꽤나 괜찮은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화차'의 원작가가 자기 소설의 본류라고 지목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되기 시작한 모양이다.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그의 소설 'D의 복합'을 우연히 발견했다.
한 편만으로 작가의 스타일을 판단하기는 섣부르지만, 이 소설에선 영화 '화차'를 보고 생각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색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대와 달리 전체적인 이야기의 뼈대는 일반적 추리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색은 서사의 소재로 활용되는 민속학에 있는데, 이것이 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진데다 미스테리의 일부로서 작용하고 있어 소설을 내용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시 기대했던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보니 조금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기대를 빼고 보면 볼만하긴 한데, 기본적으로 추리소설로서 미스테리의 구조가 좀 성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소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스테리를 만들어가는 인물인 하마나카의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이 강하고, 잘 짜여진 미스테리라고 하기에는 우연적인 요소도 많을 뿐더러, 사건을 벌이는 게 꼭 이런 방식이어야 했는가라는 필연성도 약한 느낌이다.
워낙 다작의 작가라 작품의 수준이 균일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니 몇 편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작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내 돈 주고 사보긴 좀 아깝고 도서관에 신청이나 해봐야겠다. 이 작가는 단편이 더 괜찮다는 말이 있으니, 단편선을 좀 찾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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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22:32 Trackback 0 Comment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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